장송과 승리의 대교향곡 (그란데 심포니) - 엑토르 베를리오즈
'장송과 승리의 대교향곡 작품번호 15'(Grande Symphonie funebre et triomphale, Op.15, 그란데 심포니)는 프랑스의 낭만주의 작곡가 '엑토르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가 남긴 네 편의 교향곡 가운데 최후의 작품이다.
작곡 배경에는 1830년 7월에 일어난 7월 혁명의 10주기를 맞아 프랑스 정부가 7월 왕정 체재에 도움을 준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파리의 바스티유 광장에 기념비를 세워 그들의 안식처를 만드는 성대한 행사를 계획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 행사의 총책임자였던 내무부 장관 드 레뮈자는 평소 열렬한 음악 애호가였고, 그는 직접 베를리오즈에게 악곡의 형식을 비롯한 연주 형태와 구성 등 모든 것들을 작곡가가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고 1만 프랑의 사례비를 약속하며 작품을 위촉한다.
작품의 의뢰를 수락한 베를리오즈는 야외에서 치러지는 행사를 고려하여 현악기가 없는 관악합주 대편성의 교향곡을 구상한다.
그리고 악장의 구성은 장송행진곡으로 시작하여 희생자의 유해를 기념비에 안치할 때 연주되는 추도곡, 그리고 행사를 마무리하는 승리의 찬가로 이루어진 3악장 형식을 선택한다.
베를리오즈는 작품에 대한 구상을 마치고 곧바로 작곡에 착수하였다. 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작곡을 마칠 수 없었고 2악장 추도곡은 자신의 미완 오페라 '종교재판관'의 악곡을 인용한다. 인용된 악곡의 원곡은 성악곡으로 이 부분은 트롬본이 대체하여 독주를 담당하고 있다.
완성된 작품은 야외에서의 초연에 앞서 1830년 7월 26일에 베를리오즈는 지인들과 비평가, 음악가들을 초청하여 비비엔 홀에서 최종 리허설 겸 연주가 실시됐다. 이때 장송과 승리의 대교향곡은 리허설을 참관한 모든 사람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장송과 승리의 대교향곡의 정식 초연은 이틀 후인 1840년 7월 28일에 파리의 거리에서 열렸다.
초연의 형식은 베를리오즈가 직접 지휘를 맡고 행사에 참여한 200여 명의 연주자들이 국민방위대 복장을 갖추고 1악장 장송행진곡과 3악장 승리의 찬가를 반복 연주하며 약 3시간에 걸쳐 도심을 행진하는 것으로 치러졌다. 그리고 2악장 추도곡은 악대의 행렬이 바스티유 광장에 도착하여 연주됐고 마지막으로 3악장 승리의 찬가가 다시 한번 연주되어 피날레를 장식할 예정이었지만, 근처에서 프랑스 국민군의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행해져 이 야외 초연은 완벽하게 실패한다.
이후 열흘 뒤인 8월 7일과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14일에 비비엔 홀에서 '군대 교향곡'(Symphonie Militaire)이라는 명칭으로 작품이 재연되어 (2악장은 '고별의 찬가'[Hymne d' Adieu]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공연이 개최되었는데 이때의 연주는 모두 성공적인 무대였다고 한다.
제1악장 장송행진곡 (Marche Funèbre)
Moderato un poco lento. 바단조
혁명의 희생자를 기념비로 운구하는 주제를 가진 1악장 장송행진곡 장대한 코다를 가진 소나타 형식으로 쓰였다.
스네어 드럼에 의해 완만한 행진곡 템포의 리듬이 제시되면 금관 섹션이 이를 계승하고 비장함이 느껴지는 주제를 플루트와 클라리넷이 연주한다.
이어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연주하는 온화한 성격의 제2주제와 중저음부의 음색으로 전개되는 세 번째 주제가 이어진 후 첫 번째 주제가 재현되고 정성스러운 코다에서 종결된다.
1악장은 약 20분에 걸쳐 연주돼 전곡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제2악장 추도 (Orasion Funèbre)
Adagio non tanto - Andantino un poco lento e sostenuto
희생자들에 대한 추도를 담은 2악장은 전편에 걸쳐 테너 트롬본의 독주로 펼쳐진다.
8 소절의 장엄한 서주 후에 레치타티보 풍의 선율로 독주 트롬본이 연주된다. 온화하게 흐르는 반주 위에 트롬본의 음색으로 자비를 담은 선율을 낭송한다. 곡은 다음 악장까지 스네어 드럼의 롤로 끊임없이 계속된다.
제3악장 승리의 찬가 (Apothéose, 아포테오즈)
Allegro non troppo e pomposo. 내림나장조
2악장으로부터 아타카(attacca)되어 트럼펫과 코넷으로 구성된 금관의 팡파르 시작되는 3악장은 A-B-A의 3부 형식으로 쓰였다. (이후 개정판에서 A에 대규모 합창이 추가됐다.)
트럼펫과 코넷으로 시작된 팡파르는 호른과 트롬본을 더하며 후반 유니즌에서 화음으로 펼쳐지는데 이 팡파르는 베를리오즈가 작곡할 당시 매우 고심한 부분이었다고 알려진 악곡이다.
이후 전체 악단이 강력한 호흡으로 코랄 풍의 중심 주제를 펼친다.
장송과 승리의 대교향곡은 작품이 처음 공개되고 2년 뒤인 1842년 2월에 작곡가 본인에 의해 현악기와 합창이 추가된 관현악판 개정이 실시됐다. 이때 베를리오즈는 처음 곡을 발표했던 관악기의 편성은 그대로 유지한 채 현악기와 합창만 임의 편성으로 추가하는 이례적인 방식으로 개정을 취했다.
오롯이 관악합주 편성만으로 연주가 가능한 거장의 작품으로 관악계에 매우 중요하고 소중한 가치가 있지만, 나중에 추가된 임의의 파트를 제외하더라도 최소 101명(현악기와 합창의 임의의 파트를 모두 추가하면 389명)이 필요한 작품으로 무대에서는 자주 접하기 어려운 곡이다.
한편 이 작품은 작곡가에게도 국가의 중요한 행사에 의미를 담아 작곡한 교향곡으로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베를리오즈 본인의 장례식에도 이 작품이 올려 퍼졌다.
편곡 버전에는 1954년부터 1979년까지 파리 경찰청 관악단(Musique des Gardiens de la Paix de Paris)의 지휘자를 역임한 파리음악원 출신의 음악가 데지레 돈데인(Désiré Dondeyne)에 의한 악보가 있다.
이 버전은 1959년에 파리 경찰청 관악단이 연주하고 데지레 돈데인이 지휘하여 음원을 녹음하기 위해 편곡된 표준 편성(원곡의 구성을 따라 색소폰은 제외) 편곡으로 프랑스의 출판사 Editions Robert Martin에서 악보의 출판이 이루어졌다.
당시 레코딩된 음원은 디지털 리마스터링 되어 여러 차례 복각판이 공개됐다.
'장송과 승리의 대교향곡 작품번호 15'(Grande Symphonie funebre et triomphale, Op.15, 그란데 심포니)의 연주 시간은 약 35분. (전 3악장)
베를리오즈에 의한 오리지널 버전의 악보는 에드윈 F. 칼무스(Edwin F. Kalmus)에서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