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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명 Che Sara
작곡 Jimmy Fontana 
작사 Franco Migliacci
음악 José Feliciano

'케 사라'(Che sarà)는 1971년에 이탈리아 출신의 배우 겸 싱어송라이터 '지미 폰타나'(Jimmy Fontana)가 곡을 쓰고 작사가 '프랑코 밀리아치'(Franco Migliacci)가 가사를 붙여 만들어진 칸초네다.  

곡을 쓴 폰타나는 1950년대에 이탈리아 음악계에 데뷔하여 1963년부터 RCA 빅터 레코드(RCA Victor Records)의 소속 음악가로  활발하게 음악활동을 펼친 가수였다.

이 곡은 그가 1971년 2월에 개최되는 산레모 음악제(Sanremo Music Festival 1971)에 참가하여 자신이 직접 연주와 노래를 하기 위해 창작한 자작곡이었다. 

그때 RCA의 프로듀서들은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유명 가수 '호세 펠리시아노'(José Feliciano)를 이탈리아로 모셔오기 위해 산레모 음악제와 폰타나의 곡을 활용할 계획을 세운다. 

 제2차 세계대전 종료 후 1951년부터 개최된 산레모 음악제는 이탈리아의 대표적 축제로. 해안도시 산레모와 인접한 프랑스 니스와 모나코 등에서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는 유럽 전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악 이벤트 가운데 하나였다. 

결국 폰타나는 소속사의 농간으로 자신의 창작곡 케 사라를 빼앗겼고 산레모 음악제의 무대에는 호세 펠리시아노와 RCA 소속으로 1967년에 데뷔한 혼성 4인조 그룹 '리키 에 포베리'(Ricchi e Poveri)가 무대에 올라 이 곡을 노래하게 된다. 

음악제에서 처음 공개된 케 사라는 2위를 차지했지만 지미 폰타나는 상심이 컸고, 이 사건으로 그는 RCA의 음악 사업에서 오랜 시간 동안 손을 떼는 계기를 맞는다. 그리고 이후로 1982년에 자신의 아들을 위해 곡을 쓰기까지 약 11년 동안 작곡하는 것을 멈추었다. 

한편, 케 사라는 음악제 직후 호세 펠리시아노와 리키 에 포베리의 녹음으로 1971년 2월에 이탈리아 RCA 빅터를 통해 앨범이 공개되고 유럽 전역에서 큰 인기를 얻는다. 특히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 스페인 스웨덴, 덴마크의 음원  시장에서 순위 1위를 차지하는가 하면 그 외의 여러 국가의 음원 차트에 상위 랭크되어 대성공을 거둔다. 


케 사라를 번역하면 '무엇이 될까'라는 의미로, 곡의 가사는 이탈리아 남부의 가난한 마을에서 자란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살아가기 위해 그들이 고향을 떠나야 하는 슬픈 현실을 노래한다. 

실제로 당시 이탈리아에는 '남부 문제'라 불리는 심각한 지역적 불균형과 격차 문제가 존재했었고 현재까지 해결되지 않은 숙제로 남아있다. 

가사를 담당한 프랑코 밀리아치는 집안의 출신지인 토스카나주 아레초도에 위치한 코르토나(Cortona)를 떠올리며 가사를 완성했다고 전했다. 

이 곡의 주인 폰타나는 자신의 아내 '레다 스브리콜리'(Leda Sbriccoli)의 고향인 남부 이탈리아 베르날다(Bernalda)에 음악을 헌정하였다. 

한편 국내에서는 가수 조용필의 커버 버전을 비롯하여 송창식 등 다양한 가수에 의해 다루어진 번안 커버 음원들이 소개되었다. 

편곡 : 마사토 묘코인 (Masato Myokoin)
연주 : 인디애나 주립 대학교 심포닉 윈드 앙상블 (Indiana State University Symphonic Wind Ensemble)
지휘 : 존 보이드 (John Boyd)
출판사 : 브레인 뮤직 (Brain Music)
연주시간 : 약 3분 14초 (출판사 표기)
출판연도/국가 : 1997년/일본 
곡 정보 : 편곡하기 쉬운 구성으로 기타와 피아노와 오르간을 비롯해 다양한 편성의 앙상블 버전이 있는 '케 사라'(Che sarà)의 관악합주 버전은 일본의 작곡가 마사토 묘코인에 의해 편곡이 이루어졌다.
이 버전은 1997년 10월 5일에 브레인 뮤직의 '팝 스테이지 : 관악합주를 위한 팝 음악 레퍼토리'(Popstage : Pop Music Repertoires for Wind Orchestra) 시리즈의 제1집으로 악보와 음원이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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